웹3란 무엇인가
목차
제2부 · 역사적·개념적 기원

3.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 기원과 아키텍처

3장7 분 분량

웹3(Web3)가 스스로 무엇이라 주장하는지 이해하려면 — 그리고 그 주장을 공정하게 판정하려면 — 먼저 웹3가 뜯어고치겠다고 나선 대상부터 이해해야 한다. 웹3는 스스로의 설명에 따르면 '웹'을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다. 그런데 '웹'은 '인터넷'과 으레 혼동되고, 이 두 시스템을 낳은 설계 철학은 검토되기보다 신화화되기 일쑤다. 이 장은 책의 나머지가 기대게 될 두 가지 토대를 놓는다. 첫째는 인터넷(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과 월드와이드웹(그 위에서 돌아가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을 가르는 정확한 기술적 구별이고, 둘째는 — 자주 인용되고 때로 과장되는 — 두 시스템 모두 '탈중앙화되고 무허가적인' 설계 철학에서 태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두 번째 논점이 주제 면에서 중요한 까닭은, 웹3의 옹호자들이 자신들의 기획을 발명이 아니라 '복원'으로 — 웹이 이탈해 버린 기원으로의 회귀로 —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 서사가 성립하는지는 뒷장들이 다룰 문제다. 여기서 할 일은 역사와 아키텍처를 정확히 잡아 두는 것이다.

인터넷과 웹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일상 언어에서 '인터넷'과 '웹'은 서로 바꿔 쓰이고, 대부분의 경우 그 혼동은 무해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다. 웹3의 논증 전체가 밑에 깔린 네트워크와 그 위에 세워진 애플리케이션 사이의 구별 위에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다 — 물리적 케이블과 무선 링크, 라우터, 그리고 공유된 규칙으로 이루어진 전 지구적 시스템으로, 연결된 어떤 컴퓨터든 다른 어떤 컴퓨터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준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은 그 네트워크 위에서 돌아가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다 — 웹 브라우저로 불러오는, 서로 연결된 문서와 자원의 체계로서, 인터넷의 가장 유명한 용도일 뿐이다.

쓸 만한 비유는 도시의 도로망과 그 도로를 이용하는 활동들의 관계다. 인터넷은 도로다. 아스팔트와 교차로, 그리고 어떤 차량이든 어떤 주소에든 닿게 해 주는 교통 규칙이다. 웹은 그 도로 위를 달리는 교통의 '한 종류'다 — 이를테면 골목골목 주소지로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 서비스다. 이메일은 또 다른 종류의 교통이고, 영상 통화도, 파일 전송도,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앱 안에서 오가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가 같은 도로 위를 달리지만, 그중 무엇도 도로망 그 자체는 아니다. 웹과 인터넷의 관계는 대략 우편 서비스와 도로망의 관계다. 기반 시설을 이용하는 더없이 중요한 서비스이지만, 기반 시설과 동일하지는 않다.

쉽게 말해: 인터넷은 배관이고, 웹은 그 관 속을 흐르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카카오뱅크 앱을 열 때,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스트리밍할 때, 브라우저를 한 번도 거치지 않는 이메일을 보낼 때, 웹은 쓰지 않으면서 인터넷을 쓰고 있는 셈이다. 브라우저로 페이지를 열 때 비로소 웹을 쓰는 것이고, 그 웹은 다시 인터넷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비유가 어긋나는 지점 하나는 짚어 둘 만하다. 도로는 정부가 소유하고 관리하지만, 인터넷에는 단일한 소유자가 없다. 인터넷은 공통의 언어를 쓰기로 합의한,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수만 개 네트워크의 자발적 상호 연결이다. 이 '주인 없음'은 우연한 성질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장의 역사적·구조적 핵심이며, 웹3가 가장 집요하게 끌어다 쓰는 특징이다.

연대기도 이 구별을 뒷받침한다. 인터넷의 기초 프로토콜은 1983년에 이미 가동 중이었다(ETHW, n.d.). 반면 웹은 1989년에 쓰인 제안서와 1991년의 공개 출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Berners-Lee, 1989; CERN, n.d.). 달리 말해 대략 20년 동안 인터넷은 있었으나 웹은 없었다. 웹은 더 젊고 더 좁은 것 — 밑에 깔린 네트워크가 성숙하고도 한참 뒤에 얹힌 소프트웨어의 한 층이다.

아파넷과 패킷 교환이라는 발상

인터넷의 계보는 아파넷(ARPANET)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말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 훗날 DARPA)이 자금을 댄 실험적 네트워크다(Britannica, n.d.). 아파넷은 대학과 연구소에 흩어져 있던, 값비싸고 서로 호환되지 않는 소수의 연구용 컴퓨터가 전화선을 통해 자원을 나눠 쓰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그것은 연구 도구였지 소비자 제품이 아니었고, 상업용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파넷의 결정적인 기술 혁신은 패킷 교환(packet switching)이었다.

패킷 교환이란 네트워크로 데이터를 옮기는 한 방법으로, 각 메시지를 '패킷'이라 부르는, 저마다 주소가 붙은 작은 조각들로 잘게 쪼갠 뒤, 그때그때 이용 가능한 어떤 경로로든 따로따로 보내고, 목적지에서 다시 짜 맞추는 방식이다.

이것을 그보다 오래된, 패킷 교환이 밀어낸 기술인 회선 교환(circuit switching)과 견주어 보자. 회선 교환은 전통적인 전화 시스템의 원리다. 회선 교환 통화에서 네트워크는 통화가 이어지는 내내 두 당사자 사이에 하나의 연속된 전기 경로를 통째로 예약해 둔다. 그 경로는 전용이며,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놀고 있다. 패킷 교환은 이 전용 경로를 없애 버린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편지 한 통을 도시에서 도시로 실어 나르려고 열차 한 편을 통째로 전세 내는 대신, 그 편지를 여러 장의 엽서에 나눠 적어 보통 우편함에 넣고, 엽서 한 장 한 장이 — 어떤 것은 이 길로, 어떤 것은 저 길로 — 제 갈 길을 찾아가게 한 뒤, 도착지에서 순서대로 다시 맞추는 것이다. 엽서마다 목적지 주소가 적혀 있으므로 네트워크는 각 엽서를 목적지 쪽으로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 메시지 전체를 이해할 필요도, 경로 하나를 계속 붙들어 둘 필요도 없다.

이 설계에는 이 책의 나머지 전체에 메아리치는 두 가지 귀결이 있다. 첫째, 이 방식은 '효율적'이다. 패킷이 실제로 움직이는 순간에만 회선 용량을 쓰므로, 수많은 대화가 같은 회선을 나눠 쓸 수 있다. 둘째 — 웹3 서사에는 이쪽이 더 중요하다 — 이 방식은 '구조적으로 견고하고 탈중앙적'이다. 각 패킷이 독립적으로 경로를 잡고 이용 가능한 어느 길로든 갈 수 있기 때문에, 거기가 무너지면 흐름 전체가 멎는 단일 지점이 없다. 회선이나 노드 하나가 죽으면 패킷은 그저 그곳을 우회한다. 모든 대화를 승인하거나 중계해야 하는 중앙 교환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말해: 패킷 교환은 네트워크에 '대체 불가능한 한가운데'가 없다는 뜻이다. 메시지는 조각조각 나뉘어 저마다 제 길을 찾아가므로, 시스템은 일부가 고장 나도 계속 돌아간다. 이 '없어서는 안 될 중심이 없다'는 속성이야말로, 훗날 웹3가 자기 유산이라 주장하게 될 탈중앙화 이상의 기술적 씨앗이다.

패킷 교환을 떠받치는 수학 이론을 개발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레너드 클라인록(Leonard Kleinrock)이다. 그는 1968년에 체결된 계약에 따라 UCLA에서 네트워크 측정 센터(Network Measurement Center)를 이끌었다(Britannica, n.d.). 아파넷의 첫 메시지가 발신된 곳도 클라인록의 연구실이었다. 1969년 10월 29일, 태평양 시간으로 밤 10시 30분 무렵, 스탠퍼드연구소(SRI)를 향해서였다. 운영자들은 "login"이라는 단어를 전송하려 했지만 수신 측 시스템이 첫 두 글자 뒤에 다운되어 버렸다 — 그리하여 인터넷의 전신을 타고 전송된 사상 최초의 메시지는, 뜻하지 않게도 잘려 나간 토막 **"lo"**가 되었다(History of Information, n.d.; Britannica, n.d.). 재미있는 일화이지만, 초기 네트워크의 기질에 관한 진실 하나도 담고 있다. 그것은 소수의 연구자 공동체 안에서 굴러가던, 미완성이고 걸핏하면 고장 나는 실험이었으며,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지작거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TCP/IP: 인터넷을 만든 공통 언어

아파넷은 하나의 네트워크였다. 엄밀한 의미의 인터넷은 그보다 야심 찬 무엇이다. 곧 '네트워크 사이의 네트워크'(inter-network), 다시 말해 따로따로 만들어지고 따로따로 운영되는 수많은 네트워크를,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음매 없는 전체로 엮는 방법이다. 이를 이루려면 패킷 교환만으로는 부족했고, 어느 네트워크든 자신의 독립성을 내주지 않고도 채택할 수 있는 공유 규칙 — 곧 '프로토콜' — 이 필요했다.

컴퓨팅에서 프로토콜(protocol)이란 기계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에 관해 미리 합의해 둔 규칙의 집합일 뿐이다. 낯선 사람끼리도 전화 통화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관례 — 누가 먼저 말하는지, 못 알아들었을 때 어떻게 신호하는지,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하는지 — 의 디지털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상호 연결 문제를 푼 프로토콜은 빈트 서프(Vinton Cerf)와 로버트 칸(Robert Kahn)이 기념비적 논문 "A Protocol for Packet Network Intercommunication"에서 기술했다. 이 논문은 1974년 5월 IEEE Transactions on Communications에 실렸다(Cerf & Kahn, 1974). 논문이 제시한 것이 훗날의 **전송 제어 프로토콜(TCP)**로, 이질적인 패킷 네트워크들 —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하드웨어와 서로 다른 내부 규칙으로 만든 네트워크들 — 이 서로 연결되어 데이터를 신뢰성 있게 주고받을 수 있게 하려는 설계였다. 이 설계는 나중에 서로 협력하는 두 프로토콜, 곧 TCP와 **인터넷 프로토콜(IP)**로 나뉘었고, 둘을 합쳐 TCP/IP라 부른다.

이 역할 분담을 가장 깔끔하게 붙잡는 길은 다시 우편 비유다. IP는 주소 지정과 배달의 층이다. 연결된 모든 기계에 숫자 주소(도로명 주소의 디지털판인 'IP 주소')를 부여하고, 개별 패킷을 그 주소 쪽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맡는다 — 다만 등기 없는 엽서를 다루는 분주한 우체국처럼, 어느 패킷이 반드시 도착한다거나 순서대로 도착한다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TCP는 그 미덥지 못한 배달 위에 세워진 꼼꼼한 편지 상대다. 엽서에 번호를 매기고, 사라진 엽서가 없는지 살피고, 없어진 것은 다시 보내 달라 하고, 저쪽 끝에서 모든 것을 올바른 순서로 다시 짜 맞춘다. 두 프로토콜은 힘을 합쳐, 제멋대로 경로를 잡은 패킷들의 혼란스러운 무리를, 애플리케이션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신뢰성 있고 순서 잡힌 데이터 흐름으로 바꿔 놓는다.

쉽게 말해: IP는 데이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해 그쪽으로 밀어 보내되 아무 보장도 하지 않는 부분이고, TCP는 그 데이터가 실제로 전부, 온전하게, 순서대로 도착하도록 챙기는 부분이다. 둘이 합쳐 인터넷의 공용어가 된다 — 속이 아무리 서로 달라도 연결된 모든 네트워크가 쓰기로 합의한 단 하나의 규칙 묶음이다.

이 설계의 두 가지 특징이 이 책의 주제 논증에 핵심적이다.

첫째는 종단 간 원칙(end-to-end principle)이다. TCP/IP는 네트워크 자체를 일부러 단순하고 '멍청하게' 유지한다. 중간의 라우터들은 패킷을 목적지 쪽으로 넘겨주는 일 이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지능 — 오류 정정, 순서 맞추기, 개별 애플리케이션의 논리 — 은 전부 '끝', 곧 보내는 기계와 받는 기계에 산다. 네트워크는 자신이 나르는 패킷이 이메일에 속하는지, 웹 페이지인지, 전화 통화인지,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애플리케이션인지 알 필요도 없고 상관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이 단일 용도 서비스가 아니라 '범용' 플랫폼이 된 것은 바로 이 덕분이다. 누구든 네트워크 운영자들에게 한가운데를 고쳐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도,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종류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

둘째, TCP/IP는 개방된 비독점 표준이다. 그것은 공표되었지 독점 라이선스를 위해 특허로 묶이지 않았다. 어느 네트워크든 채택할 수 있었고, 채택하는 데 누구의 상업적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DARPA가 1983년 1월 1일 아파넷을 TCP/IP로 공식 전환했을 때, 오늘날까지 전 지구적 인터넷의 운영 핵심으로 남아 있는 프로토콜이 자리를 잡았다(ETHW, n.d.). 인터넷이 '이긴' 것은 어느 회사가 마케팅을 가장 잘해서가 아니라, 열린 표준 덕분에 무한정 많은 네트워크가 자발적으로 서로 결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탈중앙화·무허가 설계 철학 —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

앞 절들이 줄곧 맴돌아 온 속성 하나를 여기서 명시적으로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초기 인터넷은 설계상 '탈중앙화'되어 있었고 '무허가적'이었다. 이 두 단어는 웹3 문헌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므로, 그 원천인 이곳에서 조심스럽게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

어떤 시스템이 탈중앙화(decentralized)되어 있다는 것은, 어느 한 주체도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어느 한 구성 요소도 그 작동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시스템이 무허가(permissionless)라는 것은, 누구든 통제 권위의 승인을 먼저 얻지 않고도 거기에 접속하고, 그것을 쓰고, 그 위에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초기 인터넷은 위에서 규정한 의미에서 탈중앙화되어 있었다. 패킷 교환은 인터넷에서 대체 불가능한 중심을 없앴고, TCP/IP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네트워크들이 본사의 지점이 아니라 대등한 동료로서 서로 연결되게 했다. 그리고 초기 인터넷은 그와 관련되지만 구별되는 의미에서 무허가적이었다. 네트워크가 패킷을 그저 넘겨주기만 하는 '멍청한 관'이었고 프로토콜이 열려 있었기에, 연구자든 — 나중에는 — 창업가든 누구의 재가도 구하지 않고 새 기계를 붙이거나 새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을 수 있었다. 어떤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해도 되는지를 결정하는 중앙 문지기는 없었다. 웹 자체가 훗날 바로 이렇게 태어날 수 있었다 — 한 사람이 발명하고, 세상에 풀어놓고, 전 지구적으로 채택되기까지, 인터넷을 '운영하는' 누군가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의미에서라면, 인터넷을 운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설계 기풍을 정식화한 것으로 자주 인용되는 글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기록한 엔지니어들 자신에게서 나왔다. 배리 라이너, 빈트 서프, 로버트 칸, 레너드 클라인록을 비롯한 여러 공저자는 널리 읽힌 역사 논문 "A Brief History of the Internet"에서, 구성 네트워크들이 자율성을 유지한 채 중앙 설계에 종속되는 대신 공통 프로토콜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개방형 아키텍처 네트워킹(open architecture networking)을 의도적으로 축으로 삼은 구조를 기술한다(Leiner et al., 2009). 이 설명에 따르면 인터넷은 본성상 위계가 아니라 대등한 자들의 연합이다.

그러나 여기서 정직한 단서 두 가지를 달아야 한다. 웹3 홍보물에 떠도는 이 역사의 낭만화된 판본에 저항하는 것이 지적 성실성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첫째, '탈중앙화'는 한 번도 전면적이지 않았다. 초기 인터넷에는 — 지금도 — 중요한 조정과 통제의 지점들이 있었다. 예컨대 주소 블록과 도메인 이름의 할당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중앙 관리가 필요했다(오늘날에는 ICANN과 지역 레지스트리 같은 기구들이 맡고 있다). 프로토콜 자체도 표준화 기구들이 관리한다. 네트워크 설계의 탈중앙화는 '라우팅과 상호 연결'에 관한 공학 원리였지, '어디에도 권위가 없다'는 절대적인 정치적 조건이 아니었다. 이 둘을 뭉뚱그리는 것은 흔한 수사적 수법이며, 이 책은 웹3 자신의 주장을 검토할 때 바로 이 수법을 따져 물을 것이다(26장 '이념으로서의 웹3' 참조).

둘째, 이 설계 철학을 빚어낸 것은 어떤 명시적인 자유지상주의 정치라기보다, 군사·학술 영역의 생존성이라는 실용적 필요와 만든 이들의 공학 문화였다. 초기 인터넷의 탈중앙화는 상당 부분 효율성과 장애 허용이라는 문제에 대한 공학적 해법이었다. 그것을 개인 주권을 위한 의도적 정치 기획으로 거꾸로 읽는 것은 시대착오다. 참이고 또 중요한 것은, 그 결과로 만들어진 '아키텍처'가 정치적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 그것은 특정한 종류의 개방성, 무허가 혁신, 중앙 통제에 대한 저항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었고, 뒤이은 운동들, 곧 사이퍼펑크와 그다음의 웹3가 그 가능성을 지키고 넓힐 가치가 있는 이상으로 붙잡았다(7장 '"웹3"의 어원과 지성사' 참조).

쉽게 말해: 인터넷은 누구든 아무의 허락 없이 끼어들거나 그 위에 새것을 발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단 하나의 고장이나 단 한 명의 소유자가 스위치를 내릴 수 없도록 지어졌다. 그 개방성은 본디 공학적 결정이었지 선언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전 지구적 시스템 — 웹 — 이 한 사람의 손에서 태어나 문지기의 승인 없이 모두에게 채택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냈다. 이 사실이야말로, 훗날 웹3가 제 타고난 권리라 주장하게 될 탈중앙화 이상 전체의 역사적 닻이다.

팀 버너스리와 CERN에서의 웹 발명

1980년대 말이 되자 인터넷은 존재했고 작동했지만, 그것으로 정보를 찾고 나누는 일은 번거로웠다. 시스템마다 문서를 호환되지 않는 방식으로 저장했고, 파일 하나를 가져오려면 그것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써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제네바 근교의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 CERN에서 일하던 영국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규모가 크고 끊임없이 변하는 과학자 공동체를 위한 이 정보 관리 문제를 풀겠다고 나섰다.

1989년 3월 — 문서 제출일은 3월 12일이다 — 버너스리는 "Information Management: A Proposal"(정보 관리: 하나의 제안)이라는 제안서를 돌렸다(Berners-Lee, 1989). 연구소의 호환되지 않는 컴퓨터들을 가로질러 접근할 수 있는 연결된 문서들의 시스템, 곧 오늘날 우리가 하이퍼링크라 부르는 것을 통해 어느 문서든 다른 어느 문서든 가리킬 수 있는 시스템을 그린 문서였다. 그의 상사 마이크 센달은 곧바로 예산을 주지는 않았으나 작업이 계속되도록 허락했고, 제안서 표지에 기술사에서 유명해진 한 구절을 적어 넣었다. "모호하지만 흥미롭다"(Vague but exciting)(CERN, n.d.; Time, 2014).

하이퍼링크(hyperlink)란 한 문서 안에 심어진 연결로, 그것을 누르면 독자를 곧바로 다른 문서나 자원으로 데려간다 — 출처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기만 하는 대신, 그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 가리키는 출처에 즉시 도착하게 해 주는 각주의 디지털판이라 하겠다.

버너스리는 자신의 창조물에 붙일 이름으로 "Information Mesh"(정보 그물)와 "The Information Mine"(정보 광산) 등 몇 가지를 저울질하다가 월드와이드웹으로 정했다(Wikipedia: History of the World Wide Web, n.d.). 이 시스템은 1991년 8월 6일 개방된 인터넷 위의 서비스로 이용 가능해졌다(CERN, n.d.). 그리고 이후의 모든 것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 하나 — CERN은 1993년 웹의 기반 소프트웨어를 퍼블릭 도메인에 두어, 어떤 로열티나 라이선스 청구권도 포기했다(CERN, n.d.). 웹은 그 아래의 인터넷처럼 거저 주어졌다. 그 결정이 없었다면 웹은 실제처럼 퍼져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웹을 이루는 세 가지 발명

웹은 모두 버너스리가 고안한 세 가지 기초 기술 위에 서 있으며, 이 셋이 합쳐져 인터넷의 날것 그대로의 데이터 운반 능력을 항해 가능한 문서들의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World Wide Web Foundation, n.d.). 셋 다 쉬운 말로 정의할 수 있다.

**HTML(하이퍼텍스트 마크업 언어)**은 웹 페이지를 적는 언어다 — 평범한 텍스트에 무엇이 제목이고 무엇이 문단이며 무엇이 링크이고 무엇이 이미지인지 표시를 달아 주는 단순한 태그들의 집합이다. 말하자면 표준화된 '페이지의 문법'이어서, 세상 어디의 어떤 브라우저든 그것을 읽고 화면에 그려 낼 수 있다.

**URL(Uniform Resource Locator)**은 더 일반적인 개념인 **URI(Uniform Resource Identifier)**의 가장 흔한 형태로, 웹 위 자원의 주소다 — http://로 시작하는, 정확히 하나의 페이지나 파일을 이름 짓고 브라우저에게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문자열이다. 문서를 위한 우편 주소라 할 수 있는데, 전 지구적으로 유일하므로 세계 어디에서든 같은 주소는 같은 자원을 가져온다.

**HTTP(하이퍼텍스트 전송 프로토콜)**는 브라우저와 웹 서버가 서로 대화할 때 쓰는 규칙의 집합이다 — 브라우저가 "이 주소의 페이지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청하면 서버가 그 페이지로 답하는 요청–응답의 관례다. HTML이 페이지의 문법이고 URL이 그 주소라면, HTTP는 페이지를 배달해 주는 '대화'다.

이 셋은 독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루에도 수십 번 쓰는 방식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하이퍼링크를 누른다. 링크에는 원하는 자원을 가리키는 URL이 담겨 있다. 브라우저는 HTTP로 URL에 이름이 적힌 서버에 그 자원을 요청한다. 서버는 HTML로 적힌 문서를 돌려보낸다. 브라우저가 그것을 화면에 그려 내면, 따라갈 새 하이퍼링크들이 함께 나타난다. 주목할 것은 이 모든 일이 TCP/IP '위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HTTP의 요청과 응답은 이 장 앞부분에서 설명한 바로 그 프로토콜들에 의해 패킷으로 실려 인터넷을 건넌다. 웹은 문자 그대로 인터넷 위에 얹힌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다 — 이 장을 연 구별을 이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는 예는 없다.

쉽게 말해: HTML은 페이지를 적는 언어이고, URL은 페이지의 주소이며, HTTP는 브라우저가 페이지를 정중히 청해서 받아 오는 문답이다. 웹이란 전 세계가 합의한 이 세 가지 관례일 뿐이며 — 인터넷의 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올라타 흐른다.

원래의 비전: 열린, 탈중앙화된 웹

버너스리의 웹은 그 밑 인터넷의 설계 기풍을 물려받아 더 밀고 나갔다. 웹은 의도적으로, 서로를 강화하는 여러 의미에서 열려 있었다. 규격은 공개되어 있었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다. CERN이 소프트웨어를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었으니 어느 회사도 표준을 통제하지 못했다. 웹은 인터넷과 똑같은 의미에서 '무허가적'이었다. 누구든 웹 서버를 돌려 페이지를 게시할 수 있었고, 누구든 페이지를 읽는 브라우저를 만들 수 있었으며, 그 어느 쪽도 중앙 권위에 신청서를 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웹은 주소 체계에서 '탈중앙화'되어 있었다. URL이 세상 어디의 어느 서버든 가리킬 수 있었으므로, 중앙 색인도, 마스터 디렉터리도, 모든 콘텐츠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단일한 호스트도 없었다. 웹은 어떤 자원이든 기관과 국경을 가로질러 다른 어떤 자원과도 연결될 수 있는, 단일하고 보편적인 정보 공간으로 구상되었다.

이 원래의 비전은 정확하게 적어 둘 가치가 있다. 웹의 이후 진화도, 웹3의 복원 주장도 모두 이 비전을 기준점 삼아 측정되기 때문이다. 웹의 첫 시대에 게시는 진짜로 분산되어 있었다. 서버를 운영하는 개인이나 기관은 그 자체로 네트워크 위의 대등한 동료였고, 자기 콘텐츠와 자기 주소를 소유했으며, 중개 없이 바깥으로 링크를 걸고 링크를 받았다. 이 아키텍처는 훗날 사람들의 온라인 활동 대부분을 매개하게 될 지배적 플랫폼들 — 검색 엔진, 소셜 네트워크, 앱 스토어 — 을 요구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나중에 왔으며, 열린 웹이 어떻게 강력한 중앙화 중개자들을 얻게 되었는지는 다음 몇 개 장의 주제다(5장 '웹 2.0: 읽기–쓰기 시대와 플랫폼 경제', 6장 '웹 2.0의 불만' 참조).

공평성을 위해 짚어 둘 사실이 있다. 버너스리 자신은 이 탈중앙화 이상에 계속 헌신해 왔으되, 블록체인과는 사뭇 다른 수단으로 그것을 추구해 왔다. 그의 후속 프로젝트 솔리드(Solid)는 이용자가 통제하는 개인 데이터 저장소를 통해 개인 데이터의 통제권을 개인에게 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는 이 작업을 "웹3"라 부르기를 명시적으로 거부해 왔다(Fast Company, 2022). 웹의 발명자 본인이 블록체인 아닌 길에서 재탈중앙화를 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웹의 탈중앙화"가 스스로를 웹3라 부르는 특정한 블록체인 기반 프로그램보다 더 넓고 더 오래된 열망임을 보여 주는 증거다 — 이 책은 이 구별을 논증 전체를 떠받치는 요체로 다루며 27장 '용어들 갈라내기'에서 다시 돌아온다.

'탈중앙화된 기원'은 어떻게 되풀이되는 이상이 되었나

이제 이 장이 마련하려던 주제적 결론을 말할 수 있다. 위의 역사는 웹3의 옹호자들이 거의 의례처럼 불러내는 강력하고 반복적인 서사 하나를 제공한다. '네트워크는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서사다. 인터넷은 없어서는 안 될 중심도 문지기도 없이 설계되었다. 웹은 소유되는 대신 거저 주어졌다. 한동안 웹에 존재한다는 것은 대등한 동료들 사이의 한 동료가 된다는 뜻이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초기 인터넷과 웹의 열려 있고 탈중앙화되고 무허가적인 성격은 역사의 우연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참된 본성'이며 — 그 본성은 이후 지배적 플랫폼들의 부상으로 배반당했고, 제대로 설계된 후계자라면 마땅히 그것을 복원해야 한다.

이 서사가 수사적으로 강력한 것은 바로 그 사실적 핵심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정말로 탈중앙화된 연합체로 설계되었고, 웹은 정말로 열려 있는 주인 없는 표준으로 출범했다. 웹3는 이 역사를 지어낼 필요가 없다. 상속받기만 하면 된다. 옹호자들이 자신의 기획을 "웹의 재탈중앙화"니 "웹을 이용자에게 되돌려주기"니 하고 설명할 때, 이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원에 명백히 존재했던 설계 철학의 상속자 자리에 앉히고 있는 것이다(25장 '정의를 향하여', 26장 '이념으로서의 웹3' 참조).

그러나 지적 정직성에 대한 이 책의 다짐은, 이 서사 곁에 두 가지 단서를 나란히 붙들 것을 요구한다. 둘 다 뒷장들에서 발전시킬 것들이다. 첫째, 위에서 보았듯 초기 네트워크의 탈중앙화는 언제나 부분적이었고, 온전히 실현된 정치적 이상이라기보다 상당 부분 공학적 성취였다. 그것을 잃어버린 유토피아로 읽는 것은 실제로 있었던 것을 부풀리는 일이다. 둘째 — 더 날카롭게 짚자면 — '상속을 주장하는 것'과 '상속이 사실인 것'은 같지 않다.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들이 자신이 불러내는 탈중앙화를 실제로 이루어 내는지 — 아니면 자신이 규탄하는 바로 그 중앙화를 새 이름 아래 재생산하는지 — 는 이 책이 길게 다룰 경험적 질문이다(29장 '비판과 회의론: 과장, 사기, 그리고 현실의 재중앙화' 참조). 계보는 진짜다. 복원의 성패는 다투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장이 확립하는 것은 기준선이다. 인터넷은 패킷 교환과 열린 TCP/IP 표준 위에 세워진, 탈중앙화된 무허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이며, 그 위에서 웹 — 버너스리의 열린, 퍼블릭 도메인 시스템인 HTML과 URL과 HTTP — 이 여러 애플리케이션 가운데 하나로 돌아간다. 둘 다 중앙 통제를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우회해 설계할 대상으로 취급한 설계 철학에서 태어났고, 그 철학 덕분에 가능했다. 그 철학이야말로 웹3의 탈중앙화 이상이 길어 올려지는 역사의 샘이다. 이 책에서 이어지는 모든 것 — 그 철학과 모순되는 듯 보였던 중앙화 플랫폼들의 부상, 그리고 그 철학을 입증하겠다고 주장하는 블록체인 기반 운동 — 은 이 기원에 대한 주석이다.

종합

이 장은 이 책의 많은 부분이 기대는 구별을 그었다. 인터넷은 밑에 깔린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이고, 월드와이드웹은 그 위에서 돌아가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다. 인터넷을 규정하는 기술들 — 1969년부터 아파넷에서 개척된 패킷 교환, 그리고 서프와 칸이 1974년에 기술하고 1983년에 가동된 열린 TCP/IP 프로토콜 — 은 없어서는 안 될 중심도 진입을 막는 문지기도 없는, 탈중앙화된 무허가 아키텍처를 인터넷에 부여했다. 팀 버너스리가 CERN에서 이룬 웹의 발명(1989년 제안, 1991년 공개, 1993년 퍼블릭 도메인 공개)은 세 가지 열린 표준 — HTML, URL, HTTP — 과 보편적이고 탈중앙화된 정보 공간이라는 비전으로 그 기풍을 확장했다.

주제적 의의는 이렇다. 인터넷과 웹의 "탈중앙화된 기원"은 신화가 아니라 문서로 남은 설계 철학이며, 웹3가 스스로를 네트워크의 참되고 주인 없는 본성의 '복원'으로 내세울 때 불러내는 되풀이되는 이상이 되었다. 이 책의 중심 논지 — 웹3는 블록체인 기술들과 탈중앙화·디지털 소유의 이념을 한데 묶은, 경합 중인 사회기술적 프로젝트로 이해할 때 가장 정확하다는 것 — 는 바로 여기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탈중앙화라는 실재하는 아키텍처의 유산이, 훗날의 중앙화를 판정할 잣대이자 웹3가 훗날 내걸고 행진할 깃발로 세워지는 지점에서다. 다음 장은 그 열린 웹이 첫 10년 동안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 웹 1.0, 읽기의 시대 — 그리고 그 한계가 뒤이어 올 플랫폼 경제의 무대를 어떻게 마련했는지로 넘어간다.

이 장에서 인용한 문헌

Berners-Lee, T. (1989). Information Management: A Proposal. CERN. https://info.cern.ch/Proposal.html

Britannica. (n.d.). ARPANET. Encyclopædia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topic/ARPANET

Britannica. (n.d.). Leonard Kleinrock. Encyclopædia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Leonard-Kleinrock

CERN. (n.d.). A short history of the Web. https://home.cern/science/computing/birth-web/short-history-web

Cerf, V. G., & Kahn, R. E. (1974, May). A Protocol for Packet Network Intercommunication. IEEE Transactions on Communications, 22(5), 637–648. https://www.cs.princeton.edu/courses/archive/fall06/cos561/papers/cerf74.pdf

Engineering and Technology History Wiki (ETHW). (n.d.). Milestones: Transmission Control Protocol (TCP) Enables the Internet, 1974. https://ethw.org/Milestones:Transmission_Control_Protocol_(TCP)_Enables_the_Internet,_1974

Fast Company. (2022). Tim Berners-Lee is building the web's 'third layer.' Don't call it Web3. https://www.fastcompany.com/90807852/tim-berners-lee-inrupt-solid-pods

History of Information. (n.d.). Charley Kline Sends the First Message Over the ARPANET from Leonard Kleinrock's Computer. https://www.historyofinformation.com/detail.php?entryid=1108

Leiner, B. M., Cerf, V. G., Clark, D. D., Kahn, R. E., Kleinrock, L., Lynch, D. C., Postel, J., Roberts, L. G., & Wolff, S. (2009). A Brief History of the Internet. ACM SIGCOMM Computer Communication Review, 39(5), 22–31. https://doi.org/10.1145/1629607.1629613

Time. (2014). Web at 25: Tim Berners-Lee's Amazing Proposal Document. https://time.com/21039/tim-berners-lee-web-proposal-at-25/

Wikipedia. (n.d.). History of the World Wide Web.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the_World_Wide_Web

World Wide Web Foundation. (n.d.). History of the Web. https://webfoundation.org/about/vision/history-of-the-web/